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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모레티 (Franco Moretti) – 세계문학, 빅데이터 비평

by MOKU 2025. 6. 23.

프랑코 모레티 (Franco Moretti) – 세계문학, 빅데이터 비평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는 이탈리아 출신의 문학 이론가로, ‘거리두기 읽기(Distant Reading)’와 ‘문학 지형학(Literary Geography)’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학비평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킨 인물입니다. 그는 문학을 전통적인 클로즈 리딩(close reading) 방식으로만 다루는 데 한계를 느끼고,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이론, 통계 분석 등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수많은 텍스트를 넓게 바라보는 읽기를 시도했습니다. 『거리두기 읽기』, 『문학을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 등 그의 주요 저작은 문학 연구의 과학화, 탈중심화, 글로벌화를 동시에 이끌며 21세기 문학비평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학의 확장: 유럽 중심주의에서 네트워크로

모레티가 가장 강하게 비판한 지점은 기존 문학사가 유럽 중심, 특히 영미권 중심의 ‘정전’(canon)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문학사가 소수의 위대한 작가와 텍스트만을 강조함으로써 수많은 비서구적, 비주류 문학을 배제했다고 지적합니다.

그에 따라 모레티는 ‘세계문학(world literature)’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합니다. 그는 문학을 국가 단위로 보지 않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이동과 교류 속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상호작용으로 간주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장르(추리소설, 고딕소설 등)가 어떻게 다양한 지역과 시기를 통해 확산되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문학 양식의 변화가 지리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지를 시각화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문학을 단순히 ‘텍스트의 집합’이 아닌, 문화적 진화의 시스템으로 보게 하며, 기존의 문학사 서술 방식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모레티는 문학의 흐름을 지도, 그래프, 트리(tree) 형태로 시각화하여, 문학사의 탈서구화·탈엘리트화를 이론과 방법론 양측에서 동시에 추구합니다.

빅데이터와 문학: 거리두기 읽기의 전환

『거리두기 읽기(Distant Reading)』는 모레티의 대표 개념으로, 기존의 ‘텍스트 안’으로 파고드는 클로즈 리딩이 아닌, 수천, 수만 개의 텍스트를 멀리서 바라보며 구조와 패턴을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그는 “우리는 너무 적은 책만을 읽어왔다”고 말하며, 문학사 전체를 바라보기 위해선 텍스트를 샘플링하고 패턴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소설의 장르 분포를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통계적으로 분석하거나, 서사 구조의 변화 양상을 시간 축에 따라 시각화하는 방식은 인간의 직관적 읽기만으로는 불가능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모레티는 문학을 ‘감상’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분석 대상으로 끌어올리며 새로운 학제 간 연구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물론 거리두기 읽기는 모든 문학적 의미를 포착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레티는 클로즈 리딩이 미처 다룰 수 없는 거시적 경향성과 구조적 반복을 보여주며, 그것이 문학 연구에 어떤 새로운 지형을 열어주는지를 실증적으로 입증합니다. 그는 통계학, 정보과학, 문화지리학, 진화이론 등을 문학 연구에 적용하며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대표적 이론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문학비평의 재구성: 해석에서 모델링으로

모레티 이론의 핵심은 단지 문학을 ‘다르게 읽자’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이라는 현상을 모델링(modeling)하고 예측할 수 있는 분석 대상으로 전환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문학을 하나의 시스템, 즉 구조와 흐름, 상호작용이 있는 네트워크로 분석하려는 시도입니다.

예컨대, 그는 영국 고딕소설의 등장-확산-쇠퇴 과정을 마치 진화론적 생명 주기처럼 시각화하면서, 문학 장르의 변화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복잡한 문화 생태계 내에서의 진화임을 설명합니다. 또한 문학 텍스트 내부의 캐릭터 관계를 그래프로 표현하여 사회적 연결망(social network)의 밀도와 영향력을 분석하는 작업도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모레티는 문학비평을 ‘텍스트 해석’이라는 전통적 정의에서 벗어나, 문학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수치화, 구조화, 예측 가능한 틀로 전환하려는 급진적 실험을 펼쳤습니다. 그는 문학 연구가 비평가의 감성과 감식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이론을 바탕으로 한 학문적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결론

프랑코 모레티는 문학비평의 방법론적 전환을 이끈 혁신적 이론가입니다. 그의 세계문학 이론은 유럽 중심주의를 넘어서고자 했으며, 거리두기 읽기를 통해 문학을 하나의 데이터, 시스템, 패턴으로 재구성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문학은 더 이상 소수 엘리트만의 담론이 아니라, 전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구조로 읽히게 되었습니다. 21세기 문학이론과 디지털 인문학의 접점을 찾고 있다면, 모레티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