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아저리스(Chris Argyris, 1923~2013)는 조직행동론과 인적자원개발(HRD) 분야에서 ‘조직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그는 특히 피터 센게와 함께 ‘학습조직’ 개념을 현실 경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심화시켰으며, 실천 중심의 조직 이론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아저리스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기술 훈련만으로는 조직이 성장할 수 없으며, 구조적 학습과 반성적 사고, 감정적 방어의 해소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조직학습의 기초: 개인 학습이 조직 학습으로
아저리스는 조직은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개인의 학습이 곧 조직 학습의 출발점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개인이 무언가를 배우는 것과, 그것이 조직 차원의 행동 변화로 연결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많은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새로운 것을 배우지만, 그 학습이 조직의 시스템, 규범, 의사결정 구조로 전이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저리스는 진정한 조직학습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찰적 학습이 팀과 조직의 관행을 변화시키는 수준까지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그는 실패나 오류의 순간에 조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주목하며, 실패를 숨기고 회피하면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실수를 인정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구조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 때, 조직은 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조직학습이란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서 기존의 사고틀, 전략, 가치에 대한 재검토를 포함하는 변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저리스의 핵심 주장입니다.
이중고리 학습: 단일고리를 넘어서 구조를 바꾸다
아저리스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단일고리 학습(Single-loop Learning)’과 ‘이중고리 학습(Double-loop Learning)’의 구분입니다. 이는 조직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얼마나 깊은 수준까지 반성하고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지를 나타냅니다.
단일고리 학습은 조직이나 개인이 오류를 감지하면, 그 결과를 수정하지만 기존의 규칙, 가치,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 채 행위만 바꾸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매출이 떨어지자 광고비를 늘리거나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는 경우입니다.
반면 이중고리 학습은 오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탐색하며, 조직이 기반하고 있는 신념, 정책, 규범 자체를 질문하고 수정하는 학습입니다. 예컨대 매출 감소가 단지 마케팅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문화, 제품 철학, 고객관계 등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입니다.
이중고리 학습은 특히 조직의 복잡성과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조건으로 강조되며, 리더십, 갈등관리, 변화관리 교육에서도 핵심 프레임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아저리스는 많은 조직이 이러한 이중고리 학습을 실천하지 못하고, 단일고리 수준에서 문제를 반복적으로 해결하려다 결국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어적 사고와 조직 학습의 장애
아저리스는 조직이 학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방어적 사고(defensive reasoning)’를 꼽았습니다. 이는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정당화, 회피, 탓하기 등의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팀장이 프로젝트 실패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거나, 부하직원이 문제를 지적하자 공격적인 태도로 반응하는 경우, 이는 방어적 사고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아저리스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는 조직 내 진정성 있는 대화와 피드백을 방해하고, 학습의 기회를 차단합니다.
그는 조직 내에서 이중고리 학습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s)’을 인식하고 해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부터가 솔직한 피드백을 수용하고, 실패를 학습 기회로 전환하는 조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아저리스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 ‘성찰적 대화(reflective dialogue)’라고 보았으며, 구성원 간 상호 신뢰, 비판 없는 청취, 공동 문제 해결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태도 변화가 아니라, 조직 문화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합니다.
결론
크리스 아저리스는 단순한 성과 향상이 아닌, 조직의 내적 성찰과 구조적 변화가 학습의 핵심임을 강조한 이론가입니다. 그의 이론은 오늘날 기업과 공공조직, 교육기관, NGO 등 다양한 조직에서 ‘변화를 위한 학습’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도구가 됩니다. 아저리스는 실패 없는 조직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더 똑똑해지는 조직이 진짜로 ‘학습하는 조직’임을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