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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세어럴 (John Searle) – 언어행위 이론, 중국어 방 이론

by MOKU 2025. 7. 8.

존 세어럴 (John Searle) – 언어행위 이론, 중국어 방 이론

존 세어럴(John Searle, 1932~ )은 미국의 분석철학자이자 언어철학, 의식철학, 인공지능 논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상가입니다. 그는 존 오스틴의 언어행위이론(speech act theory)을 계승·발전시켰으며, 동시에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대표하는 ‘중국어 방’ 사고실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어럴은 언어가 단순한 의미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는 행위라고 보았고, 의식이 단지 정보처리 과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AI, 의미론, 인식론, 윤리 등 다방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언어행위 이론: 말은 세계를 바꾸는 행위다

세어럴은 존 오스틴의 “말하는 것은 행하는 것이다(doing things with words)”라는 철학을 확장하여, 언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행위로서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을 이론화했습니다. 그의 언어행위이론에서는 모든 발화 행위가 세 가지 층위를 포함합니다:

  • 발화 행위(utterance act): 실제로 말을 내뱉는 물리적 행위
  • 발언 행위(illocutionary act): 질문, 명령, 약속, 선언 등 말에 담긴 ‘의도적 힘’
  • 반응 행위(perlocutionary act): 상대방에게 미치는 실제 효과

예컨대 "내일 회의 있나요?"라는 문장은 단순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책임을 상기시키고, 준비를 유도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세어럴은 특히 ‘발언 행위’에 담긴 규약적 힘(constitutive rules)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언어가 사회제도(결혼, 계약, 게임 등)의 규칙을 만들고, 유지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언어철학은 법철학, 사회철학, 조직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언어를 통한 현실 구성’이라는 관점을 제공하며, 오늘날 정치 담론, 언론 비판, 문화연구 등에서도 중요한 이론적 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의식 철학과 중국어 방: 인공지능 비판의 철학적 토대

세어럴의 또 다른 핵심 기여는 의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는 1980년 논문에서 ‘중국어 방(Chinese Room)’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컴퓨터가 언어적 명령에 반응한다고 해서 ‘이해’하거나 ‘의식’을 가졌다고 볼 수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중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방 안에서 중국어 입력과 출력 규칙이 적힌 매뉴얼을 참고해 정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외부에서는 이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는 중국어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기호를 조작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세어럴은, 기계가 문법 규칙을 따르며 반응한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이나 ‘이해’를 지닌 것은 아니다고 지적합니다. 즉, 인간의 정신은 단순히 프로그램된 정보처리 체계가 아니라, 의도성(intentionality)과 질적인 주관성(qualia)을 지닌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 관점은 튜링 테스트를 넘어 인공지능 윤리와 설계의 근본적 철학에 도전장을 던지며, ‘의식이 있는 AI가 가능한가?’라는 현대 인공지능 논쟁의 핵심을 구성합니다.

사회적 현실 구성과 의미의 힘: 철학적 응용

세어럴의 철학은 언어와 의식이 단지 개인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기능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힘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언어가 ‘명령’이나 ‘설명’을 넘어, 제도적 현실을 창조하는 도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합니다”라는 발화는 단지 말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을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법적 계약, 정치적 선언, 경제 거래 등 현대 사회에서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 규범적 기능을 하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또한 세어럴은 언어가 항상 규칙 위에서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규칙은 단지 말하는 사람의 의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된 제도와 기대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언어의 의미는 ‘행위’이며, 그 행위는 사회질서의 기반이 됩니다.

세어럴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조직 담론, 인공지능 인터페이스, 법제도 설계 등 다양한 현대 문제에 대한 이론적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특히 의미의 형성, 의식의 작동, 규칙 기반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그는 현대 철학과 기술 담론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존 세어럴은 언어와 의식, 인공지능을 가로지르는 철학을 통해 ‘의미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사상가입니다. 그의 언어행위 이론은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힘임을 드러냈고, 중국어 방 사고실험은 인공지능 논의에서 이해와 의식의 본질을 가르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세어럴의 철학은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설계하는 모든 방식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유의 틀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