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는 독일 신칸트학파 출신의 철학자로, 인간을 “기호적 존재”로 규정하며 문화철학과 상징철학의 방향을 제시한 대표적인 현대 사상가입니다. 그는 『상징 형식의 철학』에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든 방식을 기호적 구조로 파악했으며, 이로써 언어, 예술, 종교, 신화 등 문화 전체를 포괄하는 인식 구조를 철학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카시러의 철학적 핵심 개념을 기호, 상징, 문화 세 축으로 나누어 정리합니다.
인간은 기호적 존재: 상징 형식 개념
카시러 철학의 가장 핵심은 “인간은 기호적 존재다(Animal symbolicum)”라는 선언입니다. 그는 인간의 사유는 본질적으로 직접적인 현실이 아닌, 상징 형식(symbolische Formen)을 통해 매개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방식은 언제나 기호적 구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상징 형식(symbolic form)이란 인간이 세계를 구성하고 이해하는 언어, 신화, 예술, 종교, 과학 등 각각의 기호 체계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인식의 틀입니다.
상징의 구조와 기능: 인식의 매개로서 기호
카시러는 상징을 단순한 대표(representation)가 아닌 구성(constitution)의 작용으로 보았습니다. 즉, 기호는 현실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는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반영 이론과는 매우 다릅니다.
기호는 세 가지 기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 표현적 기능 (expressive) – 감정이나 인상을 직접적으로 나타냄
- 표상적 기능 (representative) – 대상을 상징하거나 지시함
- 의미 구성적 기능 (symbolic) –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세계를 조직함
이러한 관점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이나, 찰스 퍼스의 기호이론과도 맞닿아 있으나, 카시러는 이를 철학적 존재론으로 확장합니다. 그는 인간의 문화는 이처럼 기호와 상징을 통한 창조의 연속적 역사이며, 이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존재 이해 방식 자체라고 강조합니다.
문화철학 : 상징 형식들의 통합적 이해
카시러의 철학은 단지 언어, 예술, 종교 등을 각각 분리하여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 형식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는 인간의 문화는 하나의 일관된 발전 궤도를 가지며, 상징 형식은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과 자기인식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신화적 사고는 세계를 감정과 정서 중심으로 구성하는 초기 단계이며, 과학적 사고는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고차 형식입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은 모두 동등하게 인간 정신의 표현이며, 그 자체로 철학적 가치를 가집니다.
그는 문화철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 체계 전체를 통합적으로 성찰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지 철학적 해석을 넘어 인간학적 이해와 윤리적 성찰, 현대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론
에른스트 카시러는 인간을 “기호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철학을 언어와 예술, 종교와 과학, 신화와 문화 전체로 확장한 인물입니다. 그는 단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기호와 상징 속에 살아 있는 인간의 정신 구조를 탐구했습니다.
오늘날 정보의 바다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 카시러는 말합니다. “기호를 성찰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을 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