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1925~1986)는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문화이론가로, 일상의 실천과 문화 소비의 창조적 측면을 분석한 대표적 사상가입니다. 그의 저서 『일상의 발명(The Practice of Everyday Life)』은 일상을 단순히 반복되는 습관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창조적 전략과 전술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우리가 ‘소비자’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문화를 생산하고 발명하는 주체임을 강조하며, 기존 권력 구조에 저항하는 실천이 일상에 녹아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일상: 반복이 아닌 창조의 공간
세르토는 일상을 ‘지배적 담론이 침투하지 못하는 창조적 영역’으로 봤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단순히 문화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비 과정에서 재해석하고, 변형하고, 우회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기존의 문화 이론에서 ‘생산자는 권력자, 소비자는 수용자’라는 이분법을 비판하는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TV 시청자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해석하고, 특정 장면을 편집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문화적 의미를 재생산합니다. 세르토는 이러한 행위를 ‘일상의 전술’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은밀한 저항과 창조를 실천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일상이란 반복의 공간이 아닌, 삶의 기술이 발휘되는 창조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걷는 방식, 텍스트를 읽는 방식, 음식을 요리하는 방식, SNS를 사용하는 방식 모두가 기존 질서에 대한 창조적 응답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사상입니다.
문화 생산: 소비를 통한 실천
세르토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이나 푸코의 권력 이론이 지나치게 구조 중심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수용자의 능동성을 조명하며, 문화는 소비되는 동시에 생산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일반 대중이 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규정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미를 탈맥락화하거나 새로운 사용법을 발명한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요리책의 레시피를 따라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 브랜드를 패러디하거나 SNS 해시태그를 변형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 등은 모두 문화 생산의 전술적 실천입니다. 세르토에게 문화 생산이란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도 개인과 집단이 자신의 목소리와 실천을 개입시키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콘텐츠 리믹스 문화, 밈 생산,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 등의 흐름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문화는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고 실행되며 변형되는 실천의 총합이라는 그의 주장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이론에 여전히 유효합니다.
전략과 전술: 권력과 저항의 관계
세르토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전략(strategy)’과 ‘전술(tactics)’의 구분입니다. 전략은 권력이나 제도, 기업 등 지배적인 주체가 사용하는 계획적 통제의 방식이며, 전술은 이에 맞서는 비지배적 주체들의 유동적이고 창조적인 대응입니다.
예를 들어 도시 계획(전략)은 길과 건물의 배치를 통해 사람들의 동선을 통제하려 하지만, 시민들은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길을 걷고, 공공장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하며 전술적 실천을 실행합니다. 세르토는 일상의 실천이란 이러한 전략에 대응하는 전술의 연속이라고 봤습니다.
결론
전술은 언제나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며 비공식적이지만, 그 안에 창조성과 저항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구조적 권력에 직접 저항하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 실천 자체가 이미 미시적 저항과 문화 생산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미셸 드 세르토의 이론은 일상을 재해석하게 만드는 강력한 렌즈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한다고 믿는 많은 행동 속에는 사실 능동적 선택, 문화적 창조, 사회적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문화의 진정한 힘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