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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크리스테바 (Julia Kristeva) – 정신분석 + 페미니즘 비평

by MOKU 2025. 5. 28.

줄리아 크리스테바 (Julia Kristeva) – 정신분석 + 페미니즘 비평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프랑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한복판에서 정신분석, 언어철학, 페미니즘을 교차시킨 독창적 사상가입니다. 그녀는 라캉(Lacan)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언어와 무의식의 관계를 탐구하며, 기존의 고정된 주체 개념을 해체하고, ‘타자’로서의 여성 정체성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이론은 문학비평, 문화연구, 젠더 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며 현대 인문학의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크리스테바 사상의 핵심인 정신분석, 주체 이론, 페미니즘 비평의 관점에서 그녀의 주요 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정신분석을 재해석한 철학자

크리스테바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기존의 분석 구조를 넘어서 언어와 무의식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으로 재구성합니다. 그녀에게 무의식은 단순한 억압의 장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원초적 충동과 의미생성의 뿌리로 작용합니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바로 세미오틱(semiotic)시네픽(thetic)의 구분입니다.

세미오틱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리듬, 몸, 정동적 표현을 의미하며, 이는 주로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됩니다. 반면 시네픽은 상징계, 즉 아버지의 이름(law of the father)과 문법, 규범 등으로 상징화된 언어 구조입니다. 크리스테바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이 두 영역이 충돌하고 얽히며 주체를 형성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녀는 특히 세미오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무의식적 충동이 언어의 틈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시는 이러한 세미오틱의 흔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간이며, 문학은 억압된 무의식을 해방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곧 문학이 단순한 언어적 구조물이 아닌, 무의식과 의미 생성의 장으로 확장되는 순간입니다.

주체의 해체와 재구성

크리스테바는 데카르트식 ‘고정된 자아’ 개념에 반기를 듭니다. 그녀에게 주체는 항상 변화하고, 분열되며, 경계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주체 개념은 라캉의 ‘언어 안에서 구성된 주체’ 개념을 계승하되, 여성성과 몸, 모성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킵니다.

특히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주체 형성과 사회적 경계의 구축 메커니즘을 설명합니다. 아브젝시옹은 혐오감, 불쾌감, 거부의 감정이며, 이는 인간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다르다고 여기는 것—피, 죽음, 여성의 몸—등을 타자화하며 발생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체는 타자를 배제하고, 문화는 정결한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게 됩니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이 아브젝시옹은 주체 형성에 반드시 수반되는 조건이며, 이때 여성의 신체는 종종 문화적 아브젝트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아브젝시옹을 문화의 경계와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역동적 힘으로 재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주체란 완성된 자아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페미니즘과 크리스테바의 차별성

크리스테바는 종종 ‘비정통 페미니스트’로 불립니다. 그녀는 보부아르처럼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기보다는, 여성성 자체의 상징적 위상을 재정립하려 했습니다. 그녀에게 여성은 단순한 억압의 피해자가 아니라, 기존 주체성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크리스테바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는 여성이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성은 다양한 역사적, 언어적 맥락 속에서 생성되는 담론적 주체이며, 그 복잡성과 유동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때 그녀는 여성의 경험을 ‘상징계의 바깥’이자 ‘세미오틱의 공간’으로 위치시키며, 기존 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잠재적 힘으로 평가합니다.

또한 그녀는 모성의 역할을 재조명합니다. 크리스테바에게 어머니는 단순한 양육자가 아니라, 주체 형성 이전의 심리적 기초이며, 세미오틱 충동이 발생하는 원천입니다. 이는 오이디푸스적 구조를 해체하고, 모성과 언어, 상상력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여성 비평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녀의 페미니즘은 바로 이 기호적, 상징적 균열을 통한 주체 재구성을 추구하는 비판적 담론입니다.

결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정신분석과 언어철학, 페미니즘을 접목해 주체성의 근본을 새롭게 질문한 사상가입니다. 그녀의 이론은 단지 여성 해방의 외침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심층적 탐구이며, 억압된 언어와 무의식의 가능성을 회복하는 작업입니다. 오늘날 페미니즘 담론이 점점 더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진화하는 지금, 크리스테바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녀의 글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사유해보세요. 해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